
교토에 갈 때마다 저는 늘 새로운 테마를 정하곤 합니다. 고즈넉한 사찰 순례, 기모노 입고 골목길 탐방,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아라시야마 산책까지. 하지만 그 어떤 테마도 빼놓을 수 없는 단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면, 그건 바로 ‘말차’입니다. 쌉싸름하면서도 깊은 감칠맛, 코끝을 스치는 풋풋한 차향, 그리고 혀끝에 남는 달콤한 여운까지.
교토의 말차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천년 고도의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담아낸 예술 작품 같다고나 할까요?
특히 말차의 본고장, 우지(宇治)에 발을 들이는 순간, 공기 중에 섞인 짙은 차향에 마음까지 차분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800여 년 전 가마쿠라 시대, 중국에서 건너온 차 씨앗이 이곳에 뿌리를 내린 이래로 우지는 일본 최고의 차 산지로 자리매김했죠. 강안개와 온화한 기후, 그리고 햇빛을 가려 재배하는 ‘오오이시타 사이바이(覆下栽培)’라는 독특한 방식은 찻잎의 쓴맛 성분인 카테킨 생성을 억제하고,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인 테아닌 함량을 극대화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토 우지 말차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의 교토 여행을 몇 배는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던, 오랜 시간과 정성이 켜켜이 쌓인 진짜 말차 디저트 맛집들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부터 신선한 감각이 돋보이는 신상 맛집까지, 저의 사심을 가득 담아 엄선한 리스트이니, 교토 여행을 계획 중이시라면 꼭 저장해두세요!
1. 말차의 심장, 우지에서 만나는 진짜배기 맛집 5선
교토역에서 JR 나라선을 타고 약 20분. 말차의 성지 우지에 도착하면 본격적인 순례가 시작됩니다. 뵤도인으로 향하는 길목부터 발걸음을 붙잡는 유혹이 정말 많지만, 진짜는 따로 있답니다.
1-1. 나카무라 토키치 본점 (中村藤吉本店)
이곳은 단순한 찻집이 아니라 살아있는 박물관입니다. 170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노렌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죠. 실제로 이곳은 메이지 시대에 사용하던 제차 공장을 개조한 공간으로, 교토부의 중요 문화 경관으로도 지정되었을 정도예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메뉴는 단연 ‘생차 젤리(生茶ゼリイ)’입니다. 차가운 대나무 통에 담겨 나오는 짙은 녹색의 젤리는 탱글탱글하면서도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데, 그 깊고 진한 말차의 풍미는 정말 다른 곳과 비교 불가!
계절에 따라 함께 나오는 토핑이 달라져서 갈 때마다 새로운 맛을 경험하는 재미도 쏠쏠하답니다. 이곳에서는 직접 찻잎을 맷돌에 갈아보는 체험도 가능하니,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꼭 한번 도전해 보세요.
1-2. 이토큐에몬 JR 우지역 앞 점 (伊藤久右衛門)
1832년에 창업한 이토큐에몬은 전통을 지키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곳으로 유명해요. JR 우지역 바로 앞에 위치해 접근성도 최고죠.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말차 파르페’는 화려한 비주얼만큼이나 맛의 조화가 환상적입니다. 말차 아이스크림, 젤리, 팥, 경단, 웨이퍼까지… 한 스푼 뜰 때마다 다채로운 맛과 식감이 입안을 즐겁게 해주죠.
하지만 제가 이곳을 특별히 추천하는 이유는 바로 식사 메뉴 때문입니다. ‘우지차 더블 커리’는 정말 상상 이상의 맛이었어요! 향긋한 말차 커리와 구수한 호지차 커리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데, 각 차의 풍미가 커리의 스파이시함과 절묘하게 어우러져서 정말 별미랍니다. 디저트뿐만 아니라 든든한 한 끼 식사를 원하신다면 최고의 선택이 될 거예요.
1-3. 츠지리 우지 본점 (辻利)
‘츠지리’라는 이름, 아마 많이들 들어보셨을 거예요. 1860년, 창업자인 츠지 리에몬이 찻잎을 덖지 않고 쪄서 만드는 ‘교쿠로(玉露)’ 제법을 확립하며 우지차의 명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유서 깊은 곳입니다.
우지 본점은 전통 가옥인 마치야를 현대적으로 개조했는데, 특히 탁 트인 테라스 좌석에서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경험은 그야말로 힐링 그 자체입니다.
이곳에서는 최상급 교쿠로를 직접 맛볼 수도 있고, 진한 말차를 사용한 생초콜릿이나 양갱 같은 고급스러운 디저트도 일품이니 꼭 한번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1-4. 모리한 TEA SQUARE MORIHAN
2023년에 문을 연, 리스트 중 가장 따끈따끈한 신상 명소입니다! 거의 200년에 달하는 역사를 가진 차 전문점 모리한이 야심 차게 선보인 복합문화공간이죠. 번화한 관광지와는 조금 떨어진 오구라역 근처에 있어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차를 즐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이곳에서는 차 마스터가 엄선한 300여 종의 찻잎 샘플을 직접 보고 향을 맡아볼 수 있고, 호지차를 볶는 과정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마치 차 연구소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답니다. 옆에 있는 ‘모리한 창고 카페’에서 맛보는 말차 디저트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차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은 ‘차 덕후’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곳입니다.
1-5. 삼성원 카미바야시 산뉴 본점 (三星園上林三入本店)
무려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 같은 곳입니다. 쇼군 가문에 차를 납품하던 어용 상인으로, 그 공로를 인정받아 ‘삼성원’이라는 칭호를 하사받았다고 해요. 뵤도인 참배길에 위치해 있는데, 1층에서는 다양한 차를 판매하고 안쪽 차실에서는 갓 격불한 신선한 말차와 빙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진가는 2층 무료 자료실과 체험 프로그램에 있어요! 1kg에 6만 엔을 호가하는 최고급 찻잎을 직접 맷돌에 갈아 말차 가루로 만들어보는 체험은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만든 말차를 그 자리에서 마실 때의 감동이란!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극찬했다는 명차 ‘켄죠 하츠무카시(献上初昔)’도 꼭 한번 맛보시길 추천합니다.
2. 교토 시내에서 즐기는 클래식 & 트렌디 말차 디저트 5선
우지까지 갈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실망하기는 이릅니다. 교토 시내에도 우지만큼이나 훌륭한 말차 디저트 맛집들이 곳곳에 숨어있으니까요!
2-1. MACCHA HOUSE 말차관 교토 산넨자카 점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우지 말차 티라미수’의 원조!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먼저 인기를 얻고 일본으로 역수입된 독특한 이력의 브랜드죠. 특히 기요미즈데라(청수사)로 올라가는 산넨자카에 위치한 지점은 80년 넘은 전통 가옥을 개조해 분위기가 정말 압도적입니다.
나무 사각 잔인 ‘마스(枡)’에 소복이 담겨 나오는 티라미수는 보기만 해도 황홀하죠. 부드러운 마스카포네 치즈 크림 아래에 촉촉하게 적셔진 시트, 그리고 그 위를 덮은 최상급 모리한 말차 가루의 조화는 그야말로 완벽합니다. 달콤함과 쌉싸름함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어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전혀 질리지 않아요. 웨이팅이 길기로 악명 높지만, 그 기다림이 전혀 아깝지 않은 맛이랍니다.
2-2. 교토 키타야마 MALEBRANCHE 로망의 숲
교토 여행 기념품으로 ‘차노카(茶の菓)’ 랑드샤 쿠키를 한 번쯤 사보셨을 거예요. 진한 말차 쿠키 사이에 화이트 초콜릿이 샌드된, 그야말로 교토의 대표 과자죠. 이 마성의 쿠키를 만드는 곳이 바로 마르블랑슈입니다. 여러 지점이 있지만 제가 추천하는 곳은 야마시나구에 위치한 플래그십 스토어 ‘로망의 숲’입니다.
이름처럼 동화 속 숲에 들어온 듯한 아기자기하고 예쁜 공간에서 디저트 공방, 상점, 카페를 모두 즐길 수 있어요. 통유리창 너머로 파티시에들이 디저트를 만드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고,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한정 디저트와 갓 구운 크루아상은 정말 꿀맛입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 여행이라면 특히 더 추천하고 싶은 곳이에요.
2-3. 마루큐 코야마엔 니시노토인 점 / 찻집 모토안
진정한 말차 고수들이 찾는 곳, 바로 300년 역사의 마루큐 코야마엔입니다. 일본 전국 차 품평회에서 수차례 1위를 차지하며 그 품질을 인정받은 곳으로, 유명 사찰이나 다도 가문에 차를 납품하는 것으로도 명성이 자자하죠.
니시노토인 거리에 있는 직영 찻집 ‘모토안(元庵)’에 들어서면 소란스러운 바깥세상과는 단절된 듯한 고요함과 마주하게 됩니다. 잘 가꿔진 작은 일본식 정원을 바라보며 즐기는 말차와 디저트는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을 선물하죠.
이곳의 ‘말차 롤케이크’는 크림이 정말 예술입니다. 느끼함 없이 산뜻하면서도 말차의 깊은 풍미가 살아있어, 단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분명 반하실 거예요.
2-4. 잇포도 차포 교토 본점 (一保堂茶舗)
교토의 부엌이라 불리는 니시키 시장 근처, 테라마치 상점가에 위치한 300년 역사의 노포입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수십 종류의 찻잎이 내뿜는 향긋한 아로마에 기분이 좋아지죠. 이곳의 매력은 2023년에 새롭게 단장한 찻집 ‘카보쿠(嘉木)’에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것을 넘어, 전문가에게 올바른 차 우리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같은 찻잎이라도 물의 온도와 우리는 시간에 따라 맛과 향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하며 배우는 시간은 정말 유익했습니다. 이곳에서 배운 대로 집에 돌아와 차를 우려 마시니, 교토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2-5. 하치쥬하치야 (八十八良葉)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아라시야마에 본점을 둔, 떠오르는 신성 하치쥬하치야입니다. 바리스타 출신의 젊은 오너가 문을 연 곳으로, 전통적인 일본차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죠. 교토 인근 다원에서 공수한 싱글 오리진 찻잎만을 사용하고, 매장에서 직접 맷돌로 갈아 최상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이 이곳의 철학입니다.
대표 메뉴인 ‘특농 말차 테린느’는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에요! 꾸덕하고 밀도 높은 식감에, 응축된 말차의 감칠맛과 향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옵니다. 최고급 말차를 아낌없이 사용했음에도 쓴맛은 전혀 없고 오직 기분 좋은 풍미만이 입안 가득 남죠. 현재는 도쿄와 가마쿠라 등에도 지점을 낼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니, 교토에 가신다면 꼭 본점의 맛을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교토에서의 말차 여행은 단순히 맛있는 디저트를 먹는 행위를 넘어,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장인들의 땀과 철학, 그리고 교토의 문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여정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곳들은 저마다의 이야기와 매력을 간직하고 있으니, 여러분의 취향에 맞는 곳을 골라 꼭 방문해 보세요. 분명 잊지 못할 달콤쌉쌀한 추억을 선물해 줄 테니까요.